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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션을 이제 스크린에서 내리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3-28 16:19:25 조회수 86

고난주간을 맞아 접하게 되는 예수님의 십자가 영상에는 영화 '패션오브크라이스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올바른 신앙을 세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와 관련한 글을 아래에 실어 보았습니다.

(인용한 글이므로 출처는 맨 아래에 적어두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성국전도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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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가 개봉된 지 십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사순절마다 한국 교회의 스크린에 가장 많이 오르곤 한다. 예수의 생애를 다른 영화가 그리 많은데, 왜 유독 패션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고 이토록 오래 이어지는 걸까? 그것은 아마 이 영화가 가장 '리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적 잔인성의 묘사가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욕망을 가장 강렬하게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초두에 분명히 제시된다. 영화의 첫 화면은 이사야 53장 5절의 인용문이고, 곧바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첫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사야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리고 겟세마네 기도 장면에서 사탄이 나타나 이렇게 유혹한다.

 

"네가 정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의 죄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느냐?"

 

이 두 장면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가 들어있다. 즉, 예수는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셨고, 그가 채찍에 맞아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 인용된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구약성서 구절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지 고통이 아니다. 그 고통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었을 뿐, 그 고통이 죽음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고통에 방점을 둠으로써 가학적 선정주의에 빠질 위험성을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다.

 

나는 영화가 개봉된 2004년에 쓴 글에서 패션의 상황 설정이 결코 성서적이지 않음을 보인 바 있다. 영화 중반 10분 동안이나 계속되는 잔인한 채찍질 장면에 집중하여 보자. 거의 카메라의 초점을 고정한 채 매질과 채찍질이 계속되기 때문에, 잔인함에 서스펜스가 가중되어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킨다. 이 장면은 뒤이어 나오는 십자가 처형 장면과 함께 이 영화를 오늘까지 롱런하게 만든 주 요인이다.

 

재미있게도, 멜 깁슨은 그 잔인함을 ‘우발성’에 돌리고 있으며, 그 우발성의 출발점을 빌라도에게 두고 있다. 이 영화에서 빌라도는 예수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 아내 클라우디아를 통해 진리의 스승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을 예수에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대제사장 가야바가 이끄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군중은 막무가내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한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과 군중을 달래기 위해 자기 부관을 시켜 예수를 죽지 않을 정도로 때리라고 시킨다. 아마도 이 태형은 십자가형을 대신할 타협으로 제시된 것이니만큼, 일반적인 경우보다 좀 심했어야 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뜻하지 않은 사이에 본래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넘어 치명적인 수준으로 비화되어 버린다.

 

태형은 회초리질로부터 시작된다. 회초리를 들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휘갈기는 로마 군인들의 매질은 그들 자신이 탈진하기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그 매질 후에도 여전히 부르르 떨며 두 손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예수를 보며 군인들은 악이 받친다.

 

다음 차례는 채찍질이다. 끝 부분에 쇠갈퀴가 달린 여러 갈래의 짧은 채찍이 예수의 몸을 파고들어 그 살점들을 찍어내며, 그의 등은 피로 흥건한 밭고랑이 되어 버린다. 심지어 채찍의 한 가닥은 그의 오른쪽 눈을 가격한다.

 

등에는 더 이상 채찍이 파고 들 자리가 없을 정도로 태형이 계속된 후, 집행관은 예수의 한 쪽 팔의 쇠고랑을 풀어 그를 드러눕히고, 다시 예수의 가슴과 배에 채찍질을 계속하게 한다. 빌라도의 부관이 태형 현장을 확인하러 왔을 때는 이미 그들의 잔인함이 애초에 지시된 정도를 훨씬 넘어버리고 난 후였다.

 

도대체 이러한 우발적인 잔인함은 성서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이러한 상황 설정은 사복음서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먼저 누가복음에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요구에 대해 그냥 매질이나 해서 놓아주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지만(눅 23:16, 22), 유대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빌라도 법정에는 매질 장면이 없다.

 

영화 패션은 요한복음에서 많은 내용을 가져온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채찍질은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요한 19:1-4), 이 영화와 같은 우발적 잔임함이 벌어질 수 없다. 빌라도가 “보라, 이 사람이라!” 하며 예수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예수는 이미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있지만, 요한복음의 예수는 그렇지 않다 (요한 19:5).

 

마가복음(15:15)과 마태복음(27:26)에는 ‘예수를 채찍질한 후에 십자가에 처형당하도록 넘겨주었다’는 짤막한 기술이 나올 뿐이다. 누가와 요한을 함께 고려하면, 마가나 마태에 영화 패션과 같은 우발성을 끼워넣기는 힘들다. 이처럼 사복음서 어디에도 영화 패션이 가정하는 우발성과 잔인함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은 없다.

 

영화에서 빌라도는 매질과 채찍질로 처참한 고기 덩어리가 되어 있는 예수를 유대 지도자들과 군중 앞에 세운다. 빌라도 자신과 일부 군중들마저 그 참혹한 모습에 흠칫 놀랄 정도이다. 그러나 대제사장 가야바는 그러한 예수의 모습을 보고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이미 시체와 별다를 것이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며 지팡이를 든 손을 내민다. 그러한 모습을 통해 유대교 지도자들의 잔악함이 더 극명하게 대조되어 나타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인간의 가장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예수를 쇠갈고리 달린 채찍으로 휘갈긴 로마군인들의 잔인함도 이를 데 없지만, 그들은 망나니의 상태로 그 일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체와 다름없는 예수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떼쓰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무자비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영화가 반유대주의라는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성서적 역사적 근거가 없는 묘사이기 때문이다.

 

성서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역사에 근거한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이 영화의 잔인함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왜 우리는 예수를 그렇게 죽이려 하는가? 왜 더 경건한 그리스도인일수록 영화 패션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가? 예수를 그렇게 잔인하게 짓밟는 것은 성서도 역사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헐리우드의 선정성에 유혹된, 우리 자신의 '경건한' 욕망이다. 더 큰 감동을 받기 위해 우리는 더 잔인하게 예수의 몸을 찢어발기는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에 대한 우리의 묵상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순절 묵상이, 예수를 십자가로 몰고 간 현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태형과 십자가형의 육체적 고통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할 십자가에는 눈을 감은 채, 예수가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만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질 십자가가 아니니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죄로 인해 죽으신 것이다. 예수는 인간을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인간에 의해 죽임 당하신 것이다. 예수를 죽인 그 현실로 눈을 돌리자.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자. 예수의 등을 휘갈기는 채찍과 그의 손과 발에 못을 박는 망치를 우리의 손에서 내려 놓자. 그리고 영화 패션을 이제 교회 스크린에서 내리자.

 

출처: 안용성 목사(그루터기교회 담임. 장신대 출강)

http://www.facebook.com/groups/151271735013602/226581717482603#!/notes/%EC%95%88%EC%9A%A9%EC%84%B1/%EC%98%81%ED%99%94-%ED%8C%A8%EC%85%98%EC%9D%84-%EC%9D%B4%EC%A0%9C-%EC%8A%A4%ED%81%AC%EB%A6%B0%EC%97%90%EC%84%9C-%EB%82%B4%EB%A6%AC%EC%9E%90/34744159530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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